About Modular Synth 13화 : 랜덤 & 샘플 앤 홀드(S&H)

옥자/매니저
2026-06-20
조회수 493


같은 패치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모듈러신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변조 소스인 LFO만으로도 패치에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LFO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파형을 반복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기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변화의 흐름 역시 점차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랜덤 소스(Random Source)입니다.


랜덤 소스는 LFO처럼 반복되는 파형 대신,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전압을 생성하는데요,

어떤 랜덤은 값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점프형(Jump) 특성을, 어떤 랜덤은 천천히 흘러가듯 변화하는 드리프트형(Drift) 특성을 보이며, 또 어떤 랜덤은 이전 값의 흐름을 유지하며 패턴처럼 이어지는 시퀀셜(Sequential) 특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즉, 모듈러신스에서 랜덤은 단순히 무질서를 만드는 기능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에 자연스러운 변수를 더하는 또 하나의 변조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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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름 자체가 'Random Source'인 서지(Serge) 시스템의 Divide and Compare  이미지 출처 : chicagomusicexchange.com


사실 모듈러신스 역사에서 랜덤은 초기 시스템이 탄생한 1960년대부터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돈 부클라(Don Buchla)와 밥 무그(Bob Moog)가 설계한 초기 모듈러 신디사이저들은 소리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적 구조를 다루기 위해 시퀀서, 터치 센서티브 컨트롤러와 함께 랜덤 전압 제네레이터(random voltage generators)를 탑재했습니다.

이를 통해 작곡가들은 완전히 정형화된 규칙과 완전한 무작위성 사이에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었는데요, 전체적인 구조는 유지하면서도 피치나 음색에 일정 수준의 우연성을 허용함으로써,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정교하게 다루기 위해 등장한 대표적인 모듈이 바로 ’Buchla 266 Source of Uncertainty(불확실성의 소스)’입니다.

Buchla 266은 단순한 랜덤 발생기를 넘어, 악기가 스스로 일관되면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랜덤 모듈의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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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설계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프리셋 저장 기능을 더한 Buchla 266e Source of Uncertainty 모듈. 사진 출처: buchla.com


Buchla 266e는 단순한 랜덤 발생기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 세 가지 노이즈 출력 (Noise Outputs): 전 대역에 고르게 분포된 Flat 노이즈와 함께, 주파수 특성이 다른 -3dB/octave, +3dB/octave까지 총 3가지 음색의 노이즈를 제공합니다.
  • 유동적인 랜덤 전압 (Fluctuating Random Voltages): 전압으로 변화 속도(probable rate of change)를 제어하며 부드럽게 움직이는 랜덤 신호입니다. 미세한 움직임부터 0.05Hz~50Hz 사이의 빠른 변화까지 표현할 수 있습니다.
  • 퀀타이즈된 랜덤 전압 (Quantized Random Voltages): 펄스 신호가 들어올 때마다 미리 지정된 개수(2~24개)의 전압 단계 중 하나를 선택해 계단 모양의 전압을 출력합니다. 단계의 개수 역시 전압으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 저장된 랜덤 전압 (Stored Random Voltages): 전압 제어가 가능한 3가지 파라미터를 통해 랜덤의 정도(Degree), 렌덤의 성향(Chaos), 그리고 출력이 특정 방향으로 치우치는 정도(Skew)를 조절할 수 있는 계단형 랜덤 전압입니다.


오늘날 유로랙 포맷에도 Buchla 266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거나, 이를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다양한 랜덤 모듈들이 존재하는데요,


Sputnik Modular의 'West Coast Random Source'는 Buchla 266의 구조와 기능을 비교적 가깝게 구현한 모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Verbos Electronics의 'Random Sampling'은 비슷한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오리지널 Buchla 266에 있던 전압 변화를 부드럽게 깎아주는 적분기(Slew 회로) 대신 아날로그 시프트 레지스터와 S&H 회로를 추가한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적인 화이트 노이즈 출력 대신 ‘메탈릭(Metallic)’ 노이즈 출력을 제공해, TR-808 심벌즈처럼 금속성 질감의 사운드를 만드는 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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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Buchla 266의 설계를 계승한 Sputnik Modular의 West Coast Random Source(왼쪽)와 아날로그 시프트 레지스터 등을 더해 변형한 Verbos Electronics의 Random Sampling(오른쪽). 사진 출처 : modulargrid.net


만약 내 시스템에 단독 랜덤 모듈을 추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가장 대중적이고 직관적인 '랜덤 LFO'부터 시작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많은 LFO 모듈이 기본 웨이브폼 중 하나로 샘플 앤 홀드나 랜덤 전압 출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Vermona의 'Fourmulator', Eowave의 'Zone B.F.', 그리고 Studio Electronics의 'STE. 16' 같은 모듈들이 대표적이며, 별다른 패칭 없이도 시스템에 간단히 랜덤 요소를 더해주는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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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전압 출력을 지원하는 LFO 모듈들. 왼쪽부터 Vermona의 Fourmulator, Eowave의 Zone B.F., Studio Electronics의 STE. 16 사진 출처 : modulargrid.net


그렇다면 이 예측할 수 없는 랜덤 전압은 회로적으로 어떤 원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대부분은 특정 순간의 전압을 샘플링하고 그 값을 일정 시간 유지하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에서 시작되는데요. 

그중 모듈러신스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널리 사용되는 구조가 바로 샘플 앤 홀드(Sample & Hold), 흔히 S&H라고 부르는 회로입니다.


Sample & Hold

모듈러 신스에서 랜덤 전압이 회로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Sample & Hold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S&H 모듈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전압 입력(Input)과 작동 타이밍을 지시하는 게이트/트리거 입력(Trigger In), 그리고 출력(Output)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이 회로는 입력단에 어떤 전압 신호든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무작위 랜덤 전압이 필요할 때는 입력 신호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이즈(Noise)를 주로 사용합니다.


S&H는 트리거가 들어오는 순간 입력된 전압(주로 노이즈)을 한 번 샘플링하고, 다음 트리거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값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말 그대로 특정 순간의 전압을 ‘스냅샷’처럼 붙잡아 두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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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앤 홀드(S&H)의 기본 구조. 불규칙한 노이즈 입력이 트리거에 의해 샘플링되며, 계단형의 랜덤 전압으로 변환된다. 이미지 출처: noiseengineering.us


노이즈처럼 계속 변화하는 전압을 입력으로 사용하고, 클럭이나 LFO를 트리거로 사용하면, 트리거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전압이 선택되고 일정 시간 유지됩니다. 이 때문에 출력은 계단처럼 끊기는 스텝형(Stepped) 랜덤 전압으로 나타납니다.


모듈러신스에서 S&H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랜덤 전압을 생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질서불확실성 사이를 연결해주기 때문입니다.

노이즈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압을 만들어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음악적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시퀀서는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S&H는 이 두 영역의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변화하는 전압 속에서 특정 순간의 값만을 선택하고, 이를 다음 트리거가 들어올 때까지 유지함으로써 규칙적인 시간 구조 안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연주자가 모든 음정과 변화를 직접 지정하는 대신, 시스템이 정해진 범위 안에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언제 변화가 일어날지는 클럭이 결정하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노이즈가 결정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S&H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랜덤 전압 생성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ample & Hold와 유사한 구조로 Track & Hold(T&H)도 있습니다. 

S&H가 특정 순간의 전압을 샘플링한 뒤 다음 트리거까지 값을 유지한다면, T&H는 일정 시간 동안 입력 신호를 추적한 뒤 마지막 값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S&H가 계단형의 전압 변화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면, T&H는 입력 신호의 흐름을 더 많이 반영해 보다 유기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움직임이 직관적인 사인파를 입력했을 때의 출력 파형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S&H는 아주 짧은 순간만 포착해 그 값을 유지하는 반면, T&H는 게이트가 켜진 구간 동안 입력 신호를 그대로 출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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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앤 홀드(좌)와 트랙 앤 홀드(우)의 출력 파형 비교. 이미지 출처 : digikey.dk


결과적으로 S&H는 계단형의 출력이 나타나는 반면, T&H는 입력 신호의 연속적인 움직임이 보다 많이 반영됩니다.

다만 랜덤 전압 생성이라는 관점에서는 S&H가 훨씬 널리 사용되며, 오늘날 대부분의 랜덤 CV 역시 이 원리를 기반으로 동작합니다.


이 구조를 실제 패치에 적용해 보면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신디사이저에서 노트를 발생시키는 트리거 신호를 복사해 S&H의 트리거 입력으로 함께 보내면, 노트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랜덤 전압이 생성됩니다.

이 전압을 필터 컷오프(Filter Cutoff)나 엔벨롭의 디케이(Decay Time)에 연결하면,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더라도 각 노트마다 조금씩 다른 음색과 어택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S&H는 스스로 랜덤 전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입력된 전압 중 특정 순간의 값을 선택해 유지하는 회로입니다.

따라서 랜덤 전압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무작위로 변화하는 입력 신호가 필요하며, 이때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스가 바로 노이즈(Noise)입니다.


랜덤의 재료 : 노이즈(Noise)

노이즈는 주파수 전역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랜덤 전압을 만들 때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스입니다.

  • 화이트 노이즈: 가청 주파수 전역에 에너지가 고르게 분포된 노이즈입니다. 모든 주파수 성분이 비슷한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어 밝고 거친 질감을 가지며, 흔히 TV의 화면 노이즈나 라디오의 잡음과 비슷한 소리로 느껴집니다. 신스에서는 퍼커션, 스네어 드럼, 바람 소리 등의 재료로 자주 사용됩니다.
  • 핑크 노이즈: 주파수가 한 옥타브 높아질 때마다 에너지가 점차 감소하는 노이즈입니다. 화이트 노이즈보다 고주파 성분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들리며, 빗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 환경음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사람의 청각 특성과도 비교적 잘 맞아 스피커 측정이나 음향 튜닝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 레드/브라운 노이즈: 저주파 성분이 더욱 강조된 노이즈입니다. 고주파 에너지가 크게 줄어들어 어둡고 묵직한 질감을 가지며, 먼 천둥소리나 폭포 소리처럼 깊고 낮은 느낌으로 들립니다. 신스에서는 저역의 움직임을 강조하거나 보다 무게감 있는 텍스처를 만들 때 활용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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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처럼 수면 보조나 환경 소음 완화 용도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노이즈는 주파수 분포에 따라 색깔로 구분된다. 신디사이저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랜덤 신호의 움직임과 질감에 영향을 준다. 이미지 출처: loudwire.com


이처럼 입력으로 사용하는 노이즈의 성질에 따라, 만들어지는 랜덤 전압의 움직임도 달라집니다.


랜덤의 형태: Stepped vs Smooth

랜덤 신호는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움직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형태에 따라 패치의 전체적인 질감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 Stepped (단계형) 

S&H를 거친 신호처럼 값이 끊어지며 계단식으로 변화하는 형태입니다. 각 값이 고정된 전압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피치 제어나 퀀타이즈된 멜로디처럼 명확한 단위로 움직이는 컨트롤에 적합합니다.


  • Smooth (연속형) 

값이 끊기지 않고 완만하게 이어지며 변화하는 형태입니다. 주로 노이즈 신호의 속도를 낮추거나, Stepped 신호에 슬루(Slew)를 적용해 만듭니다. 주기적인 LFO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움직임을 가지므로, 음색이나 모듈레이션에 부드러운 변화를 줄 때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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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신호의 두 가지 형태: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속형(Smooth)과 계단식으로 끊기는 단계형(Stepped). 이미지 출처 : prismcircuits.net


이처럼 랜덤 신호는 그 자체로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되지만, 완전히 가공되지 않은 단순한 랜덤 전압은 음악적인 제어가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듈러 시스템에서는 랜덤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반복성과 확률을 조합해 일정한 흐름과 패턴을 갖도록 만드는 다양한 방식들이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생성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시스템 구조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듈로 구현되며 확장되어 왔습니다.


랜덤의 구조화

중요한 것은 랜덤 자체를 생성하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저장하고 반복하며 변형 가능한 구조로 다루느냐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완전한 무작위성과 반복되는 패턴 사이에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Shift Register

시프트 레지스터(Shift Register)는 여러 개의 Sample & Hold 회로를 직렬로 연결한 구조입니다.

트리거(클럭)가 들어올 때마다 첫 번째 단계에 저장된 값은 두 번째 단계로, 두 번째 단계의 값은 세 번째 단계로 이동합니다.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랜덤 값이 시간차를 두고 시스템 안을 순차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매번 완전히 새로운 값이 출력되는 일반적인 랜덤 소스와 달리, 이전 신호의 흔적이 시차를 두고 그대로 유지되므로 랜덤과 반복이 공존하는 독특한 시퀀스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부클라(Buchla) 시스템을 위해 커스텀 제작된 아날로그 시프트 레지스터(ASR)가 시초이며, 이후 서지(Serge) 시스템을 통해 처음 상용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로랙 시장에서는 피드백 구조를 더해 예측 불가능성을 높인 아날로그 모듈 Snazzy FX의 'Telephone Game'부터, 이를 디지털로 구현한 Intellijel 'Shifty', Make Noise 'Ren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듈이 이 시프트 레지스터 방식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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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레지스터 구조를 활용한 대표적인 모듈들. 아날로그 구조의 Snazzy FX 'Telephone Game'(좌)과 디지털 방식의 Intellijel 'Shifty'(중), Make Noise 'Rene Mk2'(우). 이미지 출처 : modulargrid.net


Turing Machine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은 시프트 레지스터를 활용해 전압 패턴을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매번 새로운 전압을 무작위로 생성하는 대신, 내부에 저장된 전압 상태를 클럭에 맞춰 순서대로 출력하는 구조입니다. 이름은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의 작업에서 유래했으며, 저장된 정보를 순환시키며 패턴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를 음악적으로 응용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음악에 적용한 초기 사례 중 하나가 1972년 MIT의 Marvin Minsky와 Edward Fredkin이 설계한 'Triadex Muse'입니다. 음을 직접 입력하는 대신 여러 파라미터를 조합해 반복되거나 변화하는 패턴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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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 따라 무작위 패턴을 자동 생성하는 초기 알고리즘 기기 Triadex Muse. 이미지 출처 : 120years.net



이러한 개념을 현대적인 유로랙 포맷으로 가져와 널리 알린 것이 Music Thing Modular의 오픈소스 DIY 키트 ‘Turing Machine’입니다.

2016년에 출시된 이 라인업은 현재 단종되었지만(2026년 6월 기준), 랜덤하게 생성된 패턴을 고정하거나 다시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튜링 머신 개념을 대표하는 유로랙 모듈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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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Thing Modular의 Turing Machine과 다양한 확장 모듈 라인업. 이미지 출처 : thonk.co.uk


튜링 머신은 생성된 랜덤 전압 패턴을 설정된 길이의 루프로 고정할 수 있고, 제어 값을 조정해 패턴이 서서히 변형되도록 만들 수 있는데요. 이 방식은 완전한 무작위와 고정된 반복 사이 어딘가(?)의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2hp TM과 같은 단순화된 튜링 머신 모듈부터 Ornament & Crime의 Quad Turing Machine 모드, 그리고 랜덤 패턴을 생성·변형·저장할 수 있는 Noise Engineering의 'Mimetic Sequent'까지 여러 형태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후 이러한 개념은 확률 기반 시퀀싱으로 더욱 발전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Mutable Instruments의 'Marble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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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able Instruments의 Marbles. 현재 제조사의 생산은 종료되었다. 이미지 출처 : modulargrid.net


Marbles는 랜덤 전압과 게이트를 생성하면서도, 이미 생성된 패턴을 일정 확률로 반복하는 ‘Déjà Vu’ 기능을 제공합니다. 사용자는 완전히 새로운 결과와 익숙한 패턴 사이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무작위성과 반복성 사이의 균형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생산이 종료된 상태이며, 오픈소스로 공개된 설계 덕분에 다양한 클론(Clone) 모듈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Random Gate

랜덤이 반드시 전압(CV)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Random Gate는 게이트나 트리거 신호가 발생할 확률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동작하는데요,

예를 들어 일정한 16분음표 클럭이 계속 들어오더라도, Random Gate는 그중 일부 트리거만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기본적인 리듬 구조는 유지하면서도 반복 루프에 자연스러운 변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드럼 패턴, 이벤트 발생, 시퀀서 진행 등에 자주 활용됩니다.


랜덤의 제어

랜덤 신호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실제 패치에서는 생성된 랜덤 전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보다 그 움직임을 조절하며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 Slew / Lag 

랜덤 전압의 가장 기본적인 제어 방식은 Slew Limiter(또는 Lag Generator)입니다. 이는 전압이 한 값에서 다음 값으로 이동할 때 그 변화를 즉시 따라가지 않고, 일정한 시간 동안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계단처럼 끊어지는 랜덤 신호는 슬루를 거치면서 점차 연결된 곡선 형태로 바뀌어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 Attenuation / Range control 

랜덤 신호는 때때로 변화 폭이 지나치게 클 수 있습니다. Attenuator는 이 범위를 줄여 랜덤의 영향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범위가 좁아지면 변화는 미세해지고, 범위가 넓어지면 패치 전체의 움직임도 커집니다.


  • Bias / Offset 

Bias 또는 Offset은 랜덤 전압이 움직이는 중심점을 이동시키는 기능입니다. 이를 통해 같은 랜덤 소스라도 특정 영역에 더 머물도록 만들거나 원하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도록 조정할 수 있습니다.


  • Probability / gating control 

랜덤을 제어하는 또 다른 방법은 변화가 발생하는 빈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Probability 기반 게이팅은 트리거가 출력될 확률을 설정하여 이벤트의 밀도를 조절합니다. 이를 통해 기본 패턴은 유지하면서도 반복 속에 적절한 변화를 더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랜덤은 단순히 생성하는 것보다 어떻게 다듬고 제한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변화의 속도와 범위, 중심점, 발생 빈도를 조절함으로써 랜덤은 단순한 무작위성이 아니라 음악적인 움직임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실전 패칭 팁

지금까지 살펴본 개념들을 실제 패치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 음표마다 다른 음색 만들기

노트 게이트를 멀티플(Multiple)로 복사한 뒤 S&H의 트리거 입력으로 보내고, 노이즈를 S&H 입력에 연결합니다.

생성된 랜덤 CV를 필터 컷오프(Filter Cutoff)나 웨이브폴더(Wavefolder)에 패치하면, 동일한 멜로디를 반복하더라도 각 노트마다 조금씩 다른 음색으로 재생됩니다. 

반복되는 시퀀스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주고 싶을 때 가장 간단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랜덤 멜로디 생성

S&H의 출력을 퀀타이저(Quantizer)에 연결한 뒤 오실레이터의 피치 입력으로 보내는 방법입니다.

무작위 전압이 특정 스케일 안의 음정으로 정리되면서 별도의 시퀀서 없이도 변화하는 멜로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클럭 속도나 퀀타이저의 스케일을 조절하면 랜덤성과 음악성 사이의 균형을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 움직임의 범위 제한하기

랜덤 신호를 그대로 사용하면 변화 폭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습니다.

이때 어테뉴에이터(Attenuator)를 사용해 범위를 줄이면 기존 패치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미세한 변화만 추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작은 범위의 랜덤이 오히려 음악적인 움직임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 슬루(Slew)로 부드럽게 만들기

S&H가 만들어내는 계단형 랜덤 전압이 너무 거칠게 느껴진다면 슬루 리미터(Slew Limiter)를 추가해 보세요.

전압 변화가 곡선 형태로 이어지면서 Stepped Random은 Smooth Random으로 변하고, 보다 유기적인 움직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필터, 리버브, 웨이브폴더 같은 파라미터를 천천히 변화시키고 싶을 때 특히 효과적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랜덤을 통해 시스템에 ‘변수’를 더하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봤습니다.

저 역시 라이브나 스튜디오 작업에서 랜덤을 자주 사용하는데, 매번 랜덤의 양보다 변화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더 고민하게 됩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랜덤만 추가해도 익숙하게 반복되던 패치에서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듈러신스를 계속 탐구하게 만드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로직(Logic) 모듈에 대해 알아볼 예정인데요.

로직은 여러 게이트와 트리거 신호를 조건에 따라 결합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모듈입니다. 랜덤이 우연성을 활용해 변수를 더한다면, 로직은 규칙과 조건의 조합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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